나무동물원 (The Wood Menagerie)
2015.12.01 - 12.31
충무로 영상센터 오!재미동


빌딩으로 가득 찬 도시, 폐나무자재로 만들어진 동물원이 개장한다.
 인간에 의해 가치와 쓸모가 정해져, 버려진 것들이 폐자재와 동물의 형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프로젝션 맵핑으로 표현되는 존재 자체의 본성에 대한 이미지는 버려진 것들이 아닌 나를 향한다.

베인 나무에게도 생명력이 존재한다.
 울창하게 성장한 나무가 잘려나간다. 사각형으로 베인 나무는 다양한 형태로 재단 돼,  인간의 삶에 혼재 된다. 쓰이고 잘라져나간 자투리들은 톱밥 먼지들과 뒤섞여 폐기물로 버려진다. 그러나 베인 나무에게도 생명력이 존재한다. 쓸모없어 보이는 베인 나무도 거친 흙 밭에 깊게 뿌리내려 버텨나간 존재의 일부분이었다. 필요에 의해서 쓰이고 남은 부분이 버려졌다고, 그 억척같은 생명력이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 필요의 조건 충족 여부를 떠나서 그 자체가 유의미한 존재다.    

동물원은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
 많은 동물들이 인간의 필요에 의해 삶이 결정된다. 인간의 수요에 의해 사육되고, 도축되며, 폐사된다. 더 이상 알을 낳지 못하는 닭도, 재주를 부리지 않는 곰도, 흉내 내지 않는   앵무새도 그 쓸모를 인간이 판단 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존재 자체로 우주의 일부분이다.  동물원은 인간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왜곡된 생태계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그 안의 많은  생명들은 인간의 욕구에 의해 값이 매겨지고, 인간의 기준에 의해 필요성의 가치척도가 결정 된다.

폐나무자재로 만들어진 동물원
 쓰이고 남은 조각난 나무덩이, 본연의 푸르름을 거세 당하고 버려진 폐자재는 주류에 속하지 못하고 점차 밀려나는 인간의 군상과 닮아있다. 창살은 존재의 본성을 말살하고, 인간의 욕구와 필요에 의해 가치를 평가하는 인간 중심의 억압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효율만을 추구하는 도시적 이미지가 투영된다. 기형적이고 흉측한 모습을 하고 있는 동물은 존재 자체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이미지가 입혀져 대비를 이룬다.
 이들이 모여 만들어진 폐자재 동물원은 ‘필요의 여부’가 아닌 ‘존재 자체’가 가진 의미를 상징한다. 인간에게 쓰이지 않는 혹은, 쓰이고 남아 버려진 것들도 저마다 존재의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쓰이고 버려지는 것, 바로 자신.
 도시라는 창살에서 인간의 필요에 의해 쓰이고 버려지는 것들, 사실 그 것은 다른 종(種)이 아닌 인간 바로 나 자신이다. 사회 속에서 우리는 다양한 무게를 지닌 타이틀을 달고   살아간다. 그 타이틀에 따라 인간의 가치가 정해진다. 외모, 직업, 학력, 경제력 등은   인간의 쓸모를 결정하고, 그 정도를 채우지 못한 이들은 사회에서 점차 배제된다.
 결국 쓸모와 가치의 기준에 의해 다른 모든 것들의 본성을 무시하던 인간은, 그 잣대를 자신과 바로 옆의 타인에게 들이댄다. 창살 속 인간의 필요에 의해 버려진 존재는, 폐자재도, 동물원 속 동물도 아닌, 인간 그리고 바로 나 자신이다. 인간은 사회라는 이름으로 왜곡시킨 또 다른 동물원에 스스로를 가둔다.






© Copyright All Right Reserved _ Song Zoohyeong 2018